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 사상 (문단 편집) ==== 신민주주의 ==== 부르주아의 힘으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던 삼민주의자들의 염원은 열강 세력의 침탈로 인해 이루기 요원한 것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민정권을 구상하여 민족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농민 세력이 연합된 신민주주의정부를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반제반봉건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라 칭하며, 마오쩌둥은 이것의 최초 격발을 5·4 운동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신민주주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과 다르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1949년에 성립된 중국인민정부는 사회주의 혁명의 산물이 아닌, 신민주주의 혁명[* 이것은 보편적으로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의 산물이었다. 1940년 마오쩌둥이 쓴 신민주주의론을 보면, ‘구민주주의혁명단계’와 ‘신민주주의혁명단계’로 중국혁명을 구분했다. 과거 중국 혁명은 구민주주의혁명단계에 있었고,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과도기적인 한 단계인 '''‘신민주주의혁명단계’'''를 거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신민주주의론은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인 것과 동시에, 반공주의적 정서가 강했던 당시 중국 현실과 제2차 국공합작 및 항일전쟁의 상황을 반영한 특수한 형태의 단계론인 것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도 해당 시점의 단계를 신민주주의 단계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 중국 내 정파였던 민주연맹과 같은 자유주의자들과도 연합한다. 그리고 1958년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생산력을 산출하기 위한 대약진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도 역시 신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시작된,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생산력 증강 정책이기도 하였다. 특히 [[대약진운동]]은 마오주의적 신민주주의 체계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체계의 이행기의 대표적인 예시인데 모든 권한을 [[지방(지리)|지방]]기관에 넘기고 [[농민]]들의 [[민병대]]를 추구하며 지방[[관료]], 민족[[자본가]], [[중앙]][[관료]], 그리고 [[농민]]과 [[지식인]]등의 모든 계급의 상호부조적 정신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였다.[*출처4 [[https://monthlyreview.org/2009/12/01/farmers-mao-and-discontent-in-china/|Farmers, Mao, and Discontent in China: From the Great Leap Forward to the Present]]] 그러나 [[대약진운동]]은 결국 모든 계급의 상호부조를 통한 농민 지방자치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믿었던 마오의 실패로 무너젔다. 한편 마오쩌둥 사상은 자본주의 발전 정도가 높은 국가에 한해서는 신민주주의 노선이 아닌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취해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마오쩌둥 사상은 신식민지 상태 하에서 반봉건-반자본주의를 강요받는 국가에 적합한 것이며, 마오쩌둥 사상 자체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